어린이와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어린이가 가족 구성의 주체일 수 없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 현실을 확인할 때마다 늘 마음이 무겁다. 어떤 이가 영화 <어느 가족>(万引き家族)을 언급하는 글을 보게 됐다. 비혈연 중심 가족 구성을 담은 영화라며 혈연 중심 가족에 대한 대안적 가치 어쩌고 하던데 이 영화가 언급될 때마다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 되는 게 솔직히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는 어린이가 가족을 선택할 수 없고, 어른/ 국가가 거두어줌으로써 결국엔 폭력적인 가정이나 시설로 돌려보내지는 구조(현실)를 보여준다. 비혈연 중심의 새로운 가족도 실은 딱한 현실에 처한 어린이를 동정하는 '어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감정을 주고 받고 의지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변함이 없다. 어떤 가족이든 간에 그것의 구성과 해체의 순간 속에 어린이는 주체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적나라한데 혈연에 얽매인 이야기들이 (비혈연도 혈연의 이야기 속에서만 말할 수 있다) 엄청 대단할 수 있는 것일까? 비혈연 중심의 구성체는 혈연 중심의 가족이 중심이 되는 사회 속에서 중요한 재현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빈곤 역시 영화의 중심 요소인데, 동정 속에서만 어린이의 가난이 되물어지는 것들이 너무 단선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과제를, 어린이 인권 침해로 볼 수 있으나 경제적 효과가 없는 존재로 읽혀온 어린이가 가난의 짐을 함께 지며 살아갈 때 도둑질은 생존을 함께 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며 자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운 게 그것 밖에 없더라도 말이지. 그래도 제대로된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며 비혈연 중심의 가난한 가족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난에서도 어린이는 밀려난다고 느꼈다. 어느 곳에도 쉽게 서있을 곳이 없다. 어린이의 생각을 제대로 묻지 않고 그들의 생각을 정해놓고 유도하는 어른/ 사회까지, 영화는 어린이의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관에서 울어버렸던 기억이 있는데 떠올리니 또 울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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