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모임이 꺼림칙한 이유
-옛날에 썼던 글
무슨무슨 ‘부모’모임은 이성애 부부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배타적 용어라는 점에서도 꺼림칙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자식’의 문제라면 무엇이든 관여 가능하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더 꺼림칙하다.
왜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식’에 대해 말하지 못해 안달이 날까? 그들의 언행, 폭력성, 꼰대질 등에 대해 고민하며 만들어진 자식 모임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혈연 중심의 ‘부모’는 지나치게 ‘자식’을 알아야만 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들만이 ‘가족’ 관계에서 ‘문제 해결사’가 된다. 물론, 비슷한 문제나 처지에 고민을 갖고 있어 함께 나누고 싶은 ‘부모’모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 역시 ‘자식’ 이야기를 하는 이상, ‘자식’의 동의와 허락이 당연히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개는 그렇지 않은 걸로 안다. “내 자식인데 말도 못 하냐”라고 한다. 한국 사회의 ‘가족’이 친밀한 유대 관계라고 하기 보다 혈연에 의한 부모-자식 간의 귀속적 관계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닌지.
그들은 과연 ‘자식’들이 본인들의 언행, 폭력성, 꼰대질 등등에 관해 고민해서 ‘자식 모임’을 차리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자신들 입장과 고민들은 모임의 결성 조건이 된다고 보지만, 반대는 그다지 생각 못 할 것이다. 그래서 가끔 상상한다. 친권자 및 보호자들이 고민이라 결성되는 ‘자식 모임’을. 하지만 도중에 상상을 포기한다. 나오는 이야기들이 너무 가관이라 혼돈 대잔치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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